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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그리고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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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C재원쌤 2022. 12. 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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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겨울방학에 사고가 있었던 터라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학기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친구들이 위로도 해주고 내 앞에서 조심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개학하자마자 반이 또 바뀌니 주변에서는 더 알 리 없었다.

중학교 때는 조금 소심한 편이라 크게 비뚤어지지는 않았지만,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다.
홀어머니께서 5남매를 키워야 했는데 큰형과 누나가 돈을 벌고 있어서 어머니의 부담은 덜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별 사고 없이 큰 어려움 없이 잘 자랐다.

대학을 체육학과로 갈 정도로 건강했었다. 
중3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고1 때 완벽한 교회 오빠가 되면서 나의 성격도 활발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성격 때문이었을까?  
대학 때 응원단에 불려갔고 외압으로 응원단장을 하게 되었다.
마음은 하기 싫었지만, 내 몸은 무대를 어느덧 즐기고 있었다.
교회 오빠에서 그냥 오빠로 변화되는 모습에 죄책감도 많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 오빠의 모습은 사라졌다.

대학응원단장에 프로 응원단장을 하며 나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나의 진로가 거의 결정되어갈 때쯤 큰 교통사고로 나의 모든 계획은 무너져 버렸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고 실제로 죽음을 생각했었지만, 차마 가족들의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목숨만 살아있는 송장과도 같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왔던 삶이 나의 경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든 것이 두렵고 어색했다.
잘 안 움직여지는 나의 몸, 중학생을 보고도 눈을 피해야 했고, 도전을 좋아하던 나는 이내 '내가 무얼 하겠어?'라며 포기했다.

그러던 중 나는 또 다른 내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재활 중 한 동생의 말 "오빠 꿈이 뭐예요?"
이 한마디 질문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당연히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주위 사람들... 
 
나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그 한마디의 질문으로 나는 삶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했다.

이 책은 내 인생을 방해하는 걸림돌에 관련된 얘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 걸림돌이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1. 걸림돌(고난)
ㄱ. 화려한 시절 - 누구에게나 화려한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누가 뭐라 해도 롯데자이언츠 응원단장 시절이었다.
건강이면 건강 인기 어깨에 힘이 빠질 날이 없었다.
치어리더들과 함께 다니며 양어깨에 날개를 반듯이 뿌듯했다. 
관중들은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고 간혹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마치 연예인을 보듯 바라보았고 소리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나는 무대에 서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프로 응원 단장이 된 계기는 좀 웃기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얘기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열심히 하자'였다.
무엇을 열심히 할 것인가? 나는 체육학과이기 때문에 복학하기 전에 열심히 운동하기로 했다.
아침 5시 30분에 기상을 해서 6시에 검도를 했다. 
7시가 되면 집으로 와서 아침을 먹고 8시부터 수영을 해서 11시까지 3시간씩 수영했다.
집까지 달리기해서 오면 12시쯤 되었고 다시 밥을 먹었다.
잠시 쉬다가 다시 검도장을 갔다. 1시간 수업하고 다시 수영장에 갔다. 저녁을 먹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태권도장에 갔다. 2시간 운동하고 오면 10시쯤 되었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2주간을 반복하니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몸을 바닥에 자석으로 붙여 놓은 느낌이었다.
다시 2주가 지나니 또 코피가 터졌다. 
적응을 할 만하니 불안함이 느껴졌다. 
다시 전단을 만들어 체대 입시 전단을 붙이던 중... 한 후배한테 연락이 왔다.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조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일당이 괜찮았고, 일을 잘하면 정직원으로 채용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산으로 갔는데... 그곳이 말로만 듣던 다단계 회사였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2박 3일을 듣고 있으니 내가 원하고 바라던 성공이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1년 6개월을 하고 나니 월세 보증금은 날아가고, 지인한테 빌린 돈 500만원, 중고차 산 할부금, 카드빚 등...
결국 이 빚을 갚기 위해 무대 위에 서기 싫었지만, 응원단장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이어도 하다 보니 신나고 즐거운 일로 변하는 경우도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단계라는 걸림돌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응원단장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훗날 이 걸림돌로 인해서 내 인생에 큰 디딤돌이 될 거란 건 아무도 몰랐다. 

ㄴ. 최소화 작전
모르는 게 약일 때가 많다.
어린 시절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통증이 생길 때가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놀다가 내가 한 일이라곤 손에 끍힌 자극을 본 것밖에 없다.
상처를 보기 전과 본 후 0.1초도 안 되는 시간의 차인데... 

나는 하나도 안 아픈 상태에서 굉장히 쓰라린 통증에 시달린다.
차라리 그 상처를 보지 않았더라면... 후회한다 한들 본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다.
생각은 자꾸 생각을 낫게 하고 계속해서 통증은 더해진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경우가 너무나 많다.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2. 디딤돌(극복)
나는 척추가 깨진 장애인이다.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바람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빠르고 건강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사건이었다.

지금도 나는 장애인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몸으로 극복했다.
이 극복은 단순히 나만의 극복으로 끝낸 것은 아니다.

현재 나는 나처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분담해주고 기쁨을 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도 아파봤기 때문에 그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잘 극복하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몸을 낫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었고 공부도 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6년 동안 재활했고 좋아지나 싶더니 결국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수술하면서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희망이 사라진 나에게 다시 희망의 불꽃을 피우기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그때 한 동생의 '오빠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터보처럼 나의 가슴에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금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큰 힘을 주고 있다. 아픈 사람을 만날수록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힘을 주고 나 역시도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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