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한 통 왔다.
“거기 허리 테이핑하는 곳인가요?”
“네 맞습니다. 어디 신가요?”
“시동생이 허리가 아파서 테이핑을 받아보고 싶은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상담 한 번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한 번 들려주세요”
시동생이 시각장애인인데 디스크가 튀어나와서 꼼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직업은 안마사이고 하루 종일 쪼그린 상태로 누군가의 몸을 만져 드려야 하는 직업이다.
몸에 무리가 가서 디스크의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수술을 하려다가 한 번만 더 손을 써보자고 해서 나에게 온 것이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결혼한 형 집에 같이 살고 있는데 자신이 돈을 벌다가 지금은 벌이도 없이 누워있으니 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조카한테 너무 미안한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눈이 보여서 쉬는 시간에 좀 움직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닌것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테이핑과 함께 트레이닝을 받기로 했다.
그 안마사는 피티를 하면서 점점 움직임이 좋아졌다.
하지만, 왼쪽 다리에 오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른 좋아지는 부분은 너무나 작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에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한 달을 더 해보라고 할까? 아니면 그만하라고 할까?’
사실 욕심이 생기기는 했지만, 올 때마다 부정적으로 얘기를 하니 나 역시도 힘이 굉장히 빠졌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재등록을 시키지 말 것인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 한 달을 더 할 것인가?
마지막 피티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말씀을 드렸다.
생각해보고 연락을 주기로 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전화가 와서 그분의 형이 보기에는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한 달만 더 해 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순간 두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첫 번째로는 나에게 주어진 한 달이라는 보너스 같은 시간에 그분을 최대한 좋게 만들기 위해서 고민해야겠다 이고, 또 다른 생각은 부담감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너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피티 때 다리의 통증을 거의 잡았다. 결국 나는 나를 넘어선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만약에 내가 먼저 포기를 선택했다면 마음은 조금 편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내가 가장 힘들 때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다리저림과 통증이 거의 사라졌는데도 움직임은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원래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움직임을 조금은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트라우마 치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아파봤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파본 사람들은 아픔에 대한 기억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 흔적은 실제 통증이 사라져도 트라우마가 남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혹시 아플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자동으로 조심하게 된다.
평소 아팠던 움직임을 통해서 실제로 그 움직임을 취했을 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아프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누울 때 허리에 오는 통증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계속 제대로 못 움직이는 것 같아서 뒤에서 보조를 해주고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시켰다.
“조금 과감하게 움직여 보세요. 뒤에서 내가 있으니까 안심하고. 제가 잡아드릴게요”
처음에는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천천히 움직임을 보조했다. 막상 움직여보니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통증이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조금씩 가속도를 줘서 움직이다가 한순간에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아악~”
자신도 모르게 비명소리를 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안 아프네요^^”
스스로 아플 거라 생각하고 있는 통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분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게 가능합니까?”
“사실 그전에도 가능했지만, 다리 저림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엄두조차 못 내셨던 거예요”
어떤 장애물이나 트라우마는 넘어서야 한다. 마음속에서 아픔이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면 몸이 좋아지더라도 아프게 살 수밖에 없다.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도 있듯이...
몸도 마찬가지다. 몸의 상처는 곧 마음의 상처를 동반한다.
마음의 상처 역시도 몸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아는 분들이랑 레프팅을 하러 갔었는데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중간에 멈췄다.
배를 뒤로 뒤집어서 쿠션으로 만들고 큰 바위 위에서 점프해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팀원 중 키가 제일 큰 여자분이 점프할 차례였다. 시작부터가 요란했다.
“아 나 물 무서워해요. 못하겠어요”
큰데 물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던 것이다. 팀원들이 할 수 있다고 하니 용기를 내서 점프했는데 갑자기 첨벙거리면 죽는다고 살려 달라는 것이다.
지켜보던 조교는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것이었다.
‘나라도 도와야 하나?’
“살려주세요. 아악~ 나 죽어요. 살려주세요”
하면서 첨벙거리고 있다.
한참을 첨벙거리다가 조교가 살짝 일으켜 세워주니 그 누나는 죽을 뻔했는데 왜 이제 구해주냐며 흘겨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뭔가를 깨달았던 모양이었다.
첨벙거리던 곳에서 일어나니 허리 정도의 깊이였다.
그 상황에서 아무도 그 분에게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체력이 방전되어서 큰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나의 테이핑과 트레이닝은 기존의 접근방식과는 조금은 다르다. 몸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함께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함께하지만 진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각장애인의 웃음을 보면서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이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해서 놓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힘들 때 한 번 더 하는 것
그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오늘도 감당하기 힘든 산을 오르고 있다. 그 산을 넘어설 때 그 누구보다 고통스럽고 힘든 싸움이지만 넘고 나면 나는 또 성장해 있을 것이다.
지금 힘이 든다는 것은 지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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